1.3조 원 규모의 거대 프로젝트, '프로젝트 도마니'
런던의 심장부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가 대대적인 변신을 예고했습니다. 갤러리 측은 최근 '프로젝트 도마니(Project Domani)'라는 이름의 확장 계획을 발표하고, 일본의 거장 건축가 쿠마 켄고가 이끄는 설계팀을 최종 승자로 선정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무려 7억 5천만 파운드(한화 약 1조 3,400억 원)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기존의 1960년대 사무용 건물을 허물고 세워질 이 신관은 미술관의 전시 공간을 대폭 넓히고, 관람객들이 도심 속에서 예술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서구 전통의 재정의와 '영토 침범'
내셔널 갤러리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건물 증축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갤러리 측은 기존 '서유럽 회화' 중심에서 벗어나 '서구 전통(Western Tradition)' 전반으로 수집 범위를 넓히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실상 현대 미술을 담당해 온 테이트(Tate) 갤러리의 영역을 넘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서유럽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서구 회화의 전통을 잇는 모든 작품을 대표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내셔널 갤러리는 지난 2014년, 미국 작가 조지 벨로스의 작품을 구입하며 이러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벨로스는 유럽을 방문한 적도 없는 전형적인 미국 현대 화가로, 그의 작품은 시기적으로나 성격상 테이트 갤러리에 더 어울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연옥과 천국: 두 미술관의 묘한 관계
역사적으로 테이트 갤러리는 내셔널 갤러리의 '부속관'처럼 여겨졌습니다. 과거 프랑스 파리의 미술계 모델을 본떠, 살아있는 화가의 작품은 테이트(연옥, 죽은 뒤 심판을 기다리는 곳)에 머물다가, 시간이 흘러 예술적 가치가 검증되면 비로소 내셔널 갤러리(천국)로 입성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1954년 독립 법안이 통과되면서 두 미술관의 경계는 모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거장(Old Master, 18세기 이전에 활동한 위대한 예술가)'이라는 칭호를 언제 부여할 것인가를 두고 두 기관은 끊임없이 충돌해 왔습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작품이 제작된 지 100년이 지나면 자신들이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테이트는 현대 미술의 뿌리가 되는 작가들을 쉽게 내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 내셔널 갤러리: 회화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시대적 범위를 확장 중
- 테이트 갤러리: 현대 미술의 독자성과 기원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
- 갈등의 핵심: 특정 작가나 작품을 어느 미술관이 소유하고 전시할 것인가에 대한 주도권 다툼
새로운 신관이 가져올 미래의 풍경
건축가 쿠마 켄고는 이번 신관이 레스터 광장과 트라팔가 광장을 잇는 새로운 '보행자 동맥'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미술관이 폐쇄적인 공간을 벗어나 도시의 흐름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과 현대미술관(MoMA) 사이에서 벌어졌던 기부자 및 작품 확보 경쟁이 런던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거대한 확장이 예술계 전체의 축복이 될지, 아니면 소모적인 '땅 따먹기' 전쟁의 시작이 될지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화가는 언제 거장이 되는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다면, 두 거대 기관의 자존심 대결은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