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년퇴직 대신 찾아온 회사의 '회생 절차'
삼영정밀의 박상훈 이사는 20년 넘게 공장을 지켜온 베테랑입니다. 3년 전, 대표이사는 그간의 노고를 치하한다며 그에게 '기술이사'라는 명함과 직함을 주었습니다. 박 이사는 뿌듯했지만, 사실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대표이사의 지시에 따라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현장을 관리했고, 매달 정해진 월급을 받았습니다. 경영권 행사나 이사회 의결권 같은 것은 박 이사에게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영정밀이 경영 악화로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법원에서 파견된 관리인은 박 이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박 이사님은 회사의 임원이니, 밀린 임금과 퇴직금은 일반 근로자와 달리 회생 계획에 따라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말이죠. 박 이사는 억울했습니다. 이름만 이사일 뿐, 평생을 근로자로 살았는데 이제 와서 임원이라는 이유로 생계비를 제때 못 받는다니요.
2. 임원이라는 이유로 임금 청구가 제한될까요?
박 이사와 같은 상황에서 핵심적인 법적 질문은 이것입니다. "회생 절차에 들어간 기업의 임원이 '형식적인 직함'만 가진 경우, 일반 근로자처럼 임금을 우선해서 받을 권리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3. 한국 법이 규정하는 근로자의 우선권
대한민국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기업이 어려워지더라도 근로자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채권을 '공익채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179조(공익채권이 되는 청구권)①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구권은 공익채권으로 한다.10. 채무자의 근로자의 임금·퇴직금 및 재해보상금
공익채권은 회생 계획에 따른 변제 순서에 묶이지 않고, 회사의 운영 자금에서 우선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강력한 권리입니다. 반면, '진정한 의미의 임원'이 받는 보수는 공익채권이 아닌 '회생채권'으로 분류되어 수년에 걸쳐 감액되거나 늦게 지급될 위험이 큽니다.
4. 한국 법원은 '실질'을 봅니다
한국 대법원은 임원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명칭보다는 실질적인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대법원 1997. 12. 23. 선고 97다44393 판결 등)
- 종속적 관계: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휘와 감독을 받으며 업무를 수행하는가?
- 업무 내용: 이사회 참여 등 경영권 행사가 아닌, 정해진 노무를 제공하는가?
- 보수의 성격: 업무 수행의 대가로 정기적인 임금을 받는가?
- 근태 관리: 출퇴근 시간 등 복무 규정의 적용을 받는가?
법원은 이사나 감사라는 직함을 가졌더라도, 실제로는 대표이사의 지휘 아래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아왔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왔습니다.
5. 박상훈 이사의 사례에 적용해본다면
박상훈 이사의 경우를 분석해 봅시다. 그는 직함만 '이사'일 뿐, 실제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여 대표이사의 감독 하에 현장 관리라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의사결정권이나 업무집행권이 없었으므로 그는 형식적·명목적 임원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법적으로 박 이사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에 해당합니다. 이 경우 그의 체불 임금과 퇴직금은 법인 회생 절차에서 '공익채권'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합니다. 즉, 관리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년 후에 받을 채권이 아니라, 지금 당장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인 것입니다.
6. 결론: 박 이사는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박상훈 이사는 회생 관리인을 상대로 직접 임금 지급을 청구하여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법원은 박 이사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직함이 무엇이든 그가 흘린 땀의 가치는 근로자로서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다음의 두 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 업무 지시 기록 확보: 대표이사나 상급자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은 메일, 메시지, 업무 일지 등을 꼼꼼히 챙겨두십시오. 자신이 '지휘·감독'을 받는 위치였음을 증명하는 핵심 증거가 됩니다.
- 경영 불참 증명: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거나, 인사권·결제권 등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여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