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뿐인 '상무님'의 눈물
박민호 씨는 지난 5년간 중소기업인 '에이텍'에서 경리부장으로 근무해 왔습니다. 성실함을 인정받은 그는 3년 전, 회사의 배려로 '상무이사'라는 직함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명함에는 '상무이사 박민호'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고, 그는 회사가 자신을 진정한 파트너로 대우해준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명함과 달랐습니다. 민호 씨는 여전히 매일 오전 9시까지 출근해 대표이사에게 일일 업무 보고를 했고, 아주 작은 지출 하나도 대표의 결재 없이는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이사'라는 직함은 대외용일 뿐, 그는 여전히 회계 실무를 도맡아 하는 경리부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경영 악화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민호 씨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회사가 "당신은 등기상 이사였으므로 근로자가 아니며, 이사의 퇴직금에 대한 정관 규정도 없으니 퇴직금을 줄 수 없다"라고 통보한 것입니다.
2. 핵심 쟁점: 직함이 우선인가, 실질이 우선인가?
이 사건의 핵심은 박민호 씨처럼 '형식상 임원의 지위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직원의 업무를 수행한 경우'를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3. 한국 법이 규정하는 '근로자'의 정의
대한민국 근로기준법과 퇴직급여법은 근로자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사용자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사'나 '감사' 같은 임원은 원칙적으로 회사로부터 사무 처리를 위임받은 사람이지, 지시를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본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임원은 근로기준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4. 한국 법원의 판단 기준: 실질주의 원칙
한국 대법원은 임원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법원의 판단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칙적 임원: 업무 집행권을 가지고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 선임되어 위임 사무를 처리하는 경우 근로자가 아닙니다. 이 경우 정관이나 주주총회 결의가 있어야만 퇴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예외적 근로자: 명칭만 이사일 뿐, 실제로는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됩니다.
즉, 독자적인 결정권이 있는지, 아니면 상급자에게 종속되어 시키는 일만 했는지가 관건입니다.
5. 박민호 씨의 사례에 대입해보기
박민호 씨의 상황을 법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는 근로자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지휘·감독 관계: 민호 씨는 대표이사에게 매일 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았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근로자의 특성입니다.
- 업무의 성격: '이사'로서 경영에 참여하기보다 '경리부장'으로서 실무적인 회계 업무에 집중했습니다.
- 독자적 권한 부재: 인사권이나 예산 집행권 등 이사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경영상의 재량권이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민호 씨는 이름만 '상무'였을 뿐, 실질적으로는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합니다. 법원은 이러한 경우 회사가 퇴직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을 위법하다고 판단합니다.
6. 결론: 박민호 씨의 승리와 독자를 위한 조언
결국 박민호 씨는 고용노동부 진정과 소송을 통해 근로자성을 인정받았고, 5년 치의 퇴직금을 모두 수령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가 내세운 '이사'라는 방패는 실질적인 근로 형태라는 창 앞에 무력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을 위한 3가지 조언입니다.
- 근거 자료를 확보하세요: 본인이 대표나 상급자로부터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받은 메일, 메신저 대화, 업무 일지 등을 보관해야 합니다.
- 직함에 속지 마세요: '본부장', '이사' 등 고위직 명칭을 가졌더라도 실제 업무 내용이 종속적이라면 당신은 근로자입니다.
-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임원의 근로자성 입증은 법리적으로 까다로울 수 있으므로, 퇴직 전후에 공인노무사나 변호사와 상담하여 자신의 지위를 명확히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 칼럼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실제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