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속 파리'를 꿈꿨던 지원의 실망
박지원 씨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프랑스계 디자인 스튜디오 '아우라 디자인'에서 2년째 근무 중입니다. 이 회사의 대표인 마크(Marc) 씨는 세련된 감각과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를 자랑했지만, 정작 근로 조건에 대해서는 늘 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우라 디자인은 마크 대표를 포함해 총 1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엄연한 한국 소재 법인이었습니다.
사건은 지원 씨가 연차 유급휴가 미사용 수당과 야간 근로 수당에 대해 문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마크 대표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프랑스인이 경영하는 글로벌 스튜디오이고, 나의 경영 철학은 유럽 기준에 맞춰져 있어요. 한국의 까다로운 근로기준법을 우리가 일일이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원 씨는 당황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는데, 단지 사장님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걸까요?
2. 핵심적인 법적 질문
이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외국인이 경영하거나 외국 자본으로 설립된 회사(상시 근로자 5인 이상)가 한국 내에서 영업할 때,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그대로 적용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3. 한국 법률의 명확한 규정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그 적용 범위를 매우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11조(적용 범위)①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이 규정에는 경영자의 국적이나 자본의 출처에 따른 예외 조항이 없습니다. 법학적으로 이는 '속지주의(Territoriality)' 원칙에 근거합니다. 속지주의란 어느 국가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해 그 국가의 법을 적용한다는 원칙입니다. 따라서 한국 영토 내에서 이루어지는 근로 계약과 노동 행위는 당연히 한국 법의 통제를 받습니다.
- 적용 대상: 국가, 지방자치단체, 국영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사업단체, 종교단체, 그리고 외국인 경영 기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
- 인원 기준: 상시 근로자가 5인 이상이라면 법의 주요 규정이 전면 적용됩니다.
4. 한국 법원의 일관된 태도
한국 법원은 오래전부터 외국인이나 외국 단체가 운영하는 사업장이라 할지라도 국내법의 적용을 피할 수 없음을 명시해 왔습니다. 법원은 근로기준법이 공공의 이익과 근로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강행규정'이라고 봅니다.
즉, 설령 노사 간에 "우리는 외국법을 따르기로 한다"는 이면 계약을 맺었더라도, 그것이 한국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보다 낮다면 그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한국 땅에서 영업하는 이상, 그 사업장의 주인이 누구든 한국의 사법 관할권 아래에 있다는 것이 사법부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5. 지원의 사례에 대한 법적 판단
이제 지원 씨의 상황을 법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첫째, '아우라 디자인'은 상시 근로자가 10명인 사업장입니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11조가 정한 '5인 이상 사업장' 기준을 충족하므로, 법의 전면적인 적용을 받습니다.
둘째, 마크 대표가 주장하는 '유럽 기준'이나 '경영자 국적'은 법적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근로 행위는 한국 근로기준법의 보호 대상입니다.
셋째, 따라서 마크 대표는 지원 씨에게 한국 법에 따른 연차 수당, 야간 근로 수당 등을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임금 체불에 해당하며 노동청 신고 대상이 됩니다.
6. 결론: 지원의 권리 찾기와 독자를 위한 조언
결국 지원 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고, 마크 대표는 한국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서야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지원 씨는 미지급된 수당을 모두 받을 수 있었고, 회사는 한국 법률에 맞는 새로운 취업규칙을 제정했습니다.
외국계 기업이나 외국인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세요.
- 국적보다 소재지가 중요합니다: 사장님이 외국인이라도 사업장이 한국에 있다면 한국 근로기준법이 우선입니다.
- 5인 이상 여부를 확인하세요: 본인의 권리를 온전히 주장하기 위해서는 사업장의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이상인지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 근로계약서의 효력을 과신하지 마세요: 계약서에 한국 법보다 불리한 내용이 있다면, 그 부분은 한국 근로기준법에 의해 무효가 되고 법정 기준이 적용됩니다.
당신의 노동은 어느 나라의 경영자 아래에 있든, 한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공정하게 보호받아야 합니다.
본 칼럼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